한 병의 와인이 전한 어떤 하루 : 2018 2Hawk Malbec을 마시며
요즘,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멈춤'을 택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선택하는 건 종종 한 병의 와인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하루의 끝에서 나를 마주한 와인은
오리건주의 남쪽 로그 밸리에서 날아온 2018년 빈티지의 2Hawk 말벡이었다.
달콤함에 속지 말 것, 그 속에 담긴 진심이 있다
와인의 첫 인상은 가끔 사람과도 닮았다.
처음 잔에 부었을 때 올라오는 건 진한 베리향.
자두, 라즈베리 같은 과일의 향이 먼저 코를 스친다.
'아, 오늘은 달콤한 하루로 풀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와인은 조금씩 얘기를 달리했다.
뒤따라오는 건 초콜릿의 잔향, 은근한 바닐라의 터치.
그리고 와인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바삭한 베이킹 스파이스.
어쩌면 이건 단지 와인의 향이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며 느끼는 내 감정의 여러 겹일지도 모르겠다.
21개월의 기다림, 그리고 지금
2Hawk 말벡은
프렌치 오크통에서 21개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 중 29%는 새 오크통, 나머지는 두 해 또는 그 이상 지난 오크.
이 점이 이 와인을 더 다층적으로 만든다.
도드라지지 않지만 묵직하게 깔리는 탄닌,
그리고 그러한 전개 속에서도 결코 무겁지 않게 마무리되는 인상.
나도 2년, 짧지 않은 시간을 준비만 하며 보냈던 때가 있다.
직장도, 사람도, 미래도 다 알 수 없던 그 시절.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 감정과도, 결심과도 발효되고 있었다.
그 시간들이 결국 이 와인이 그러하듯,
조금은 부드럽게, 조금은 단단하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이다.
셀러에 남겨두고 싶은 의미
이 와인을 리뷰했던 Rob Theakston은
“1~2년 더 세워두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 ‘미래의 맛’을 남기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단 한 병, 그것마저 비워내고
남은 건 ‘텅 빈 병’ 하나.
나도 그랬다.
어떤 선택들은 기다림으로 남기지 못한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감정은 때론 너무도 강렬해
‘다음’의 여유를 남기지 않을 때가 있다.
비워낸다는 건 때로는 후회지만, 더 자주 '용기'였다.
어떤 하루는, 한 병의 와인만큼의 가치가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좋은 와인 한 병은 사람의 하루를 위로한다.'
그것도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함께 공감하고 조용히 조언하며
때로는 나 대신 내 마음을 풀어주는 그런 존재.
2018 2Hawk Malbec은 나에게 그런 하루를 안겨줬다.
진하고, 부드러우며,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와인.
마치 오래전 친구의 위로처럼.
아니,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 와인처럼 기억될 사람이고 싶다.
잠시라도, 멈추고 바라보기를
요즘의 나는
새로운 하루가 술처럼 알코올이 되어
몸 속을 돈 후, 조용히 열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 남은 열기처럼
이 와인의 향도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슬픔에 취하고
기쁨도 병 속에 따라 마시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오늘,
2018 2Hawk Malbec과 함께 느낀 것처럼
하루의 끝에는 반드시 작은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믿어본다.
[한 줄 정리]
2Hawk, 그 이름처럼
어딘가 날아가는 중이었다가
이 잔 안에 조용히 착륙했다.
그리고 날 위한 쉼표가 되어주었다.
✔ 가격 : $35
✔ 와이너리 : https://www.2hawk.wine/
✔ 평점 : 9.0 /10 (Rated A-)
언젠가 당신도 이 와인 한 병을 곁에 두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돌이켜볼 수 있기를.
우리가 비워내는 건
항상 ‘술’만은 아니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