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질감(異質感)이라는 이름의 한 잔 – Ferrand Renegade Barrel No. 3
우리는 가끔, 아주 다른 것을 섞고 나면 더 좋은 무언가가 태어날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늘 나는 한 잔의 브랜디를 통해 ‘이질감’이라는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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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rand Renegade Barrel No. 3.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프랑스 코냑 메종 ‘페랑(Maison Ferrand)’이 만든 이 제품은, 공식적으로는 ‘코냑’이 아니다. 왜냐고? 코냑 규정(AOC)에 따르면, 엄격한 숙성과정과 오크통 사용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녀석, 자메이카 럼 통에서 마무리 숙성을 마쳤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 이 브랜디는 더 이상 ‘코냑’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Eau-de-Vie de Vin’이라는, 프랑스어로 '와인으로 만든 인생의 물줄기’ 같은 우아하지만 모호한 이름을 갖게 된다.
마치, 길을 잃은 청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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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을 잃은 술은 어떻게 맛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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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호기심은 결국 내가 한 병을 들이게 만들었다.
| 그리고… 한 모금, 두 모금. 나는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이질감’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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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맡았을 때, 처음 내 코끝을 스친 건 자메이카 럼 특유의 ‘펑키함’,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섬의 습한 공기와 녹슨 철제 계단, 그리고 오래된 피혁 시장의 잔향이 스쳐갔다.
"정말 브랜디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럼도 아니고, 코냑도 아닌, 도대체 이건 뭐지?"란 말이 뒤따랐다.
맛을 보자, 그 의문은 더욱 짙어졌다.
탄내 가득한 목재, 깊고 쓰디쓴 다크 초콜릿,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건 길거리의 젖은 아스팔트 냄새.
무척이나 복잡했고 흥미로웠지만,
그 이질적인 조화가 끝끝내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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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그렇다.”
가끔 우리는 다른 세계에 너무 깊이 들어갔다가,
속했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길을 잃고,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회색의 경계에서 머무르게 된다.
Ferrand Renegade Barrel No. 3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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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술을 마신 그날 밤, 혼자 작은 글을 써 내려갔다.
“같지 않은 것들의 충돌은, 때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불편하다.
하지만 그러한 불편함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정의한다.
나는 어느 세계의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가.”
가끔은, 술 한 잔도 인생을 되묻는 질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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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의 누군가는 이 브랜디를 '혁신'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실험적인 아웃사이더'라며 찬사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술을 마시며,
‘조율되지 않은 혼합’이 줄 수 있는 이질감을 온전히 체험했다.
이 감정, 낯설었지만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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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잘 섞인 칵테일도 있지만,
때로는 서로 다른 영혼이 부딪혀 튕겨나가는 그런 술도 있다.
Ferrand Renegade Barrel No. 3는 나에게 그런 술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 ‘어울리지 않음’조차 인생의 맛이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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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rrand Renegade Barrel No. 3
💬 정체성: Eau-de-Vie de Vin (공식적으로는 코냑이 아님)
🌡️ 도수: 96.4 Proof
💰 가격: 약 $90
👃 향: 자메이카 럼 특유의 펑키함, 오래된 피혁, 휘발유, 금속
👅 맛: 타버린 나무, 다크 초콜릿, 검은 커피, 검은 후추, 절제된 단맛
🎯 평가: B- (Drinkhacker 기준)
“좋은 술은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술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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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대한민국 블로그 작가 H
인생을 술에 비추어보며 매일을 살아가는 중입니다.